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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아님 예상했던 대로 :: 2009/02/28 20:47
언젠가 공분(共憤) 이라 얘기한 적이 있었지. 그때 일부 세력이라 말하던 이들이 이제와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턱 밑까지 물이 차오니 이제 스스로가 '조난되었다' 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 만큼은 구제되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람' 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건가.
착각. 그래 착각하고 있는 거지. 정부가 뭔가를 해줄 것 같은 믿음. 정부 역시 자기들이 뭔가를 하면 시장이 나아지리라 믿는 모습. 역겨운 선민 의식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공분을 느끼는 데에는 또다른 큰 사회적 착각이 있다. 그건 지금의 경제 상황이 과연 비정상적인가 하는 것. 지금이 비정상일까.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잠시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님 원래가 비정상이었던 건 아니고.
그래서 어쩌라고 하던 인간들, 경제가 살아야 한댔다. 그러면서도 내 재산 한 푼이라도 줄어들면 안된단다.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나조차도 내 돈 누가 가져간다는데 그러시죠 할 순 없겠지. 그런데, 사회의 약자와 소수의 정의가 무시되고 오로지 돈, 자본, 대기업, 권력이 제일로 들어서서 어떤 희생이든 강요를 하고 있는데, 집 값 빠지면 안되니까 세금 내려달라, 월급 깎이면 안되니까 비정규직 없애라, 회사 짤리면 안되니까 쓸데없이 데모하지 마라, 촛불켜지 말라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상황이 더 나빠지니 정부를 못 믿겠단다. 일자리 없어지고 성과급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도 요지부동이니 불만이 슬금슬금 새어나오다가, 자기 아들들, 잘 나신 엘리트들 취업할랬더니 월급깎는다고 하니 펄쩍 뛰신다. 대학생들도, 전국이 촛불로 뒤덮여도 자칭 진보라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조용하던 대학이 이번 잡쉐어링 방안이 나오자 들고 일어설 움직임을 보인다.
몰랐냐? 정말 몰랐던거냐? 난 지금 이건희 같은 사람들한테 얘기하는게 아니다. 그분들은 원래 그러신 양반이니까. 서민과 중산층, 일반인, 혹은 평범한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경제가 나랑 뭔 상관이야 하던 골빈 영혼들이나, 그래도 좌파는 싫다던 박쥐 같은 새끼들. 전부 쓰레기다.
달러화 유동성이 일시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한국은 디폴트 목전에 와 있다. 아직도 정부가 유동성 문제라고 금리를 낮추고 건설업 부양을 위해 뻘짓을 하면 경제는 그야말로 괴사한다.
부동산, 금융에 집중된 탐욕을 걷어내야 한다. 이 정권이 오기전부터 우리는 성장동력을 잃었다. 포기해야 한다. 못사는 나라로써 아주 오랫동안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그러면 어떠냐. 다같이 가난해져도, 서로 사랑하고 굶어죽는 사람 없고, 국민소득이 만불이 되도 소득격차만 줄이면 우린 더 행복할 수 있다. 정말 이런 건 불가능한 걸까.
탐욕.
이걸 없애지 못하는 한 답은 없다.
다섯살짜리 꼬마들에게까지 뼈 속까지 박혀 국민성이 되어버린 탐욕.
Seven Pounds :: 2009/02/13 22:20

In seven days, God created the world. And in seven seconds, I shattered mine.
그 죄책감의 일그램이라도 느껴볼 수 있다면 그의 결정을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선량한 희생으로 기억될 그의 죽음이 실은 지독한 자기 위안이었단걸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더욱이 그를 사랑했던 이들에겐, 죽음으로써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버리고 싶은 그를 받아들일 수 없을테니.
죄책감의 무게 앞에서 먼저 죽기를 결심하고, 그리고 죽음 뒤에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먹먹한 여운은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을 그 결심과 죽어서도 가벼워지지 않았을 것 같은 죄책감 때문이다.
단 1 파운드의 살점이 곧 생명을 의미하듯, 때로 하나의 작은 죄책감이 삶을 지탱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으로 죽기를 작정해 본 적 있는가.
죄책감의 무게는 희생으로 덜어내지지 않는다.
이해되지 못할 결심이라해도, 혹은 의미없을 희생으로 기억될 뿐이라 해도,
어느 한 순간의 실수와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앞에 놓고,
마음의 위안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존재치 않았기를 바람이 죄책감이 이끄는 가장 무서운 결말이다.
나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만 그 나약함으로 인한 잔인한 선택에 눈물 흘려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