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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들 :: 2009/05/29 00:06
오늘 나도 모르게 싫은 얘기가 나온다. 얘기해봐야 달라질 것 없고 공감하기 쉽지 않은 얘기를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뱉고 말았다. 정치적으로 그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에 대해 나 마저도 택시기사 처럼 얘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인간 노무현의 죽음은 내게 절망의 확인이었음을 알리고 싶었다.
가난했지만 노력했고 뜻이 있었다. 살아 생전에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했다. 정의로운 것을 신념으로 살았고 온 사회가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거짓말처럼 대통령이 되었고 구체제에 맞써 싸웠다. 변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어느 한 편과도 올바르지 못한 것과는 타협하지 않았다. 언론과 재벌과 검찰과 정치인과, 심지어 국민들과도 싸웠다.
그래서 사회는 변화하였는가. 그가 깨부수고자 했던 권위주의와 자본권력과 언론권력과 사법적 부정의와 사회적 폭력이 지금 다 사라졌는가. 그의 죽음은 대답해준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음을.
입바른 소리 하고 살면은 정맞는다고 그랬다. 무엇이 옳은지 누가 모르냐 옳은 대로 하고 살면 바보 된다 그랬다. 어떤 조직이건 권력있는 자들 눈치보면서 보신하고 재산 축적하면 성공이라 말했다. 지난 50년간 권력의 그늘에서 민족을 배반한 이들이 정의와 인권을 권력과 성장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죽음으로 대신한 부당한 권력의 고발에도 사법부는 움직이지 않고, 재벌 비리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은 언권에 의해 사회적 살인을 당하고, 명명백백한 증거에도 권력과 재벌과 언론을 겨냥한 수사는 혐의 없음으로 끝맺을 뿐이다.
권력이 없거나 그것에 속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모든 개인은 일차적 욕망이 충족되는 한해서 만족할 뿐, 누구든 사회적 정의와 부당함을 얘기하려고 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언제라도 희생되고 말 한시적 자유와 인권과 행복을 보장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절망적인 것은, 그 벽을 누구도, 영원히,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더 무서운 주장을 하고 싶다. 오늘을 보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부모가 재벌이거나 국회의원이거나 장차관이 아닌 대한민국 99.9%의 평범한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것은 엄격한 패배주의자의 말이다.
열심히 살면은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라는 대로 하면 권력의 끄트머리 한 켠 붙잡을 수 있을 거란 말이다. 개인이 개인에 대하여 평등하지 않고 자유롭지도 정의로울 수도 없는 나라. 그 속에서 나의 아버지들보다 더 지독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모두가 이땅에 남아서 같은 생각을 갖고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인간 노무현의 죽음은 내게 정의를 위해 꿈을 가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비극적으로 끝맺을 수 밖에 없음을,
합법적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서도 걷어낼 수 없는 구체제의 부정의한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던가를,
내가 품었던 삶의 가치들이 지금 여기서 얼마나 절망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지를,
가르쳐준다.
... 마음으로 :: 2009/05/26 17:19
정신이 휘청하더니 몸이 아프다.
내가 느낀 절망감은 그의 십분의 일이라도 되었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죄책감의 크기는 그 사람의 인격이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입장, 사법적 유무죄를 벗어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악한 감정들때문에 마지막까지도 괴로워했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죽어서도 변치 않을 세상이기에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
이젠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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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될 :: 2009/05/17 22:12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여전히 참 많다.
그러지 않았어도, 않았어야 하는 일들이 줄어들지 않는다.
왠지 그럴 것 같으면 애써 피해가는 방법을 나름의 노력이라고 해왔었는데
사람들을 대하고 생각과 기분을 표현하는 그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모르고, 돌아오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학교 다니는 것처럼 능력이 탁월하여 사람들 없이도 혼자 지낼수 있다거나
친해지긴 쉽지 않아도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들 만날수 있는 것도 아닌데
생활을 담보로 하는 조직 생활에서 언제든지 그들과 다르면 내쳐져야 할 몸이건만
다가올 불리함을 못보고 끝까지 진심으로 내뱉어버리고 마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한번도 쉬거나 바뀌지 않고 동일한 집단에 속해서 2년을 넘어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막연하게나마 꿈이라는 것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평생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잘하면 좋을텐데, 사소한 공격에도 죽자사자 덤비는 꼴이라니.
내 학습능력은 언제부터 정지되어 똑같은 실패들로부터 배워놓은 것 없이 스물여덟이나 되어버렸을까.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 blonote
메이트, Be Mate :: 2009/05/11 22:34

메이트 1집 BE MATE 발매일 2009.4.24
적당히 부드럽고 짙은 감수성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같은 느낌도 들고 루시드 폴처럼 조용하기도 하고,
음악적으로 딱히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한참이 지나서 스무살 그 언저리를 회상하는 낯익음이 든다.
기타를 샀는데, 세워두고만 있다.
스물 여덟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못한 음악적 재능에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부지럼을 더한다면
서른 즈음에는 음악적으로 이 정도의 감성이 내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 고백
2. 그리워
3. COME BACK TO ME
4. IT'S ALL RIGHT
5. 하늘을 날아
6. 너에게.. 기대
7. 우울한 너에게
8. 왜
9. 난 너를 사랑해
10. 안녕
얼른 결혼하시길 :: 2009/05/09 23:48
예전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영자가 김제동에게 물었다.
'송윤아야, 나야? 꿈이야, 현실이야?'
그러자 김제동이 말하길
'꿈은 이루기가 힘들고, 현실은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2003년인가 김제동이 이소라와 같이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종의 고민 해결 코너였었는데 그때부터 김제동은 참 말을 잘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수많은 인생의 고민 앞에서도 긍정적이고 유머를 잃지 않는 충고를 해주던 그가,
사랑이나 연애의 고민들 앞에서는 늘 패배자스러운 모습만 보였다.
충분히 그러지 않아도 될 나이, 위치에 올랐으면서도 자신을 못난 사람인양 대하던 그의 말투가 생각난다.
어제 결혼 소식을 뉴스로 보고 제일 먼저 김제동 생각이 났다.
그것이 진심이든, 사실이었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김제동의 못난 남자 이미지는 앞으로 몇년은 더 갈 것 같다.
그도 얼른 결혼을 해버리면 다행일 것이나 수년전 라디오에서의 그의 모습이 쉽사리 바뀔것 같지는 않다.
여튼 내가 갖고 있는 패배자, 루저 마인드, 그 시발이 그때 들었던 라디오와 김제동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단에 공감이 클수록 태도와 말투가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때는 나름 성공적인 연애를 하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사랑에 있어서 피해자가 되려고 하는 못난 남자 습성은 이제보니 그때부터 있던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유행하는 패배자 말 놀이가 있던데, 때론 일종의 자기 포기가 긍정적인 것일 수 있다.
세상이 일류, 경쟁, 치열한 삶의 태도를 요구할 때 겁이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가치들만이 정답은 아니고, 또 정답대로 살 필요도 없으니까.
중요한 건,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비관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루저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단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정함은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이룰 수 있는 꿈을 꾸자, 만족스런 현실에서도.


